특정 임무가 없는 임원이라는 만족이나 보람이 없는 자리에 스티브 잡스는 만족할 수 없었다. 또 리사 프로젝트는 그가 없어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제프 래스킨은 1979년 연말 연휴동안 일반 대중을 위한 작고 저렴한 컴퓨터의 작동되는 원형을 만들었다. 회사 이름에 '애플'에 어울리는 사과 품중 중 하나인 '매킨토시'로 지었다. 원래는 'McIntosh'로 표기되지만 어떤 이유인지 'Macintosh'로 썼다. 하지만 요즘은 사과 품종의 이름을 'Macintosh'로 잘못 표기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최초의 매킨토시는 128KB의 메모리와 7.83MHz 프로세서를 가지고 있었다. 하드디스크는 없었다.
1980년 매킨토시는 취소됐다가 다시 추진되기를 반복했다. 1981년 초반 스티브는 뭔가 할 일이 필요했다. 토스터처럼 사용하기 쉬운 컴퓨터를 지향하는 래스킨의 생각에 호기심을 느꼈다. 스티브가 매킨토시에 관심을 가지자 래스킨의 팀은 사기가 올랐다.
1981년 말에 만들어진 새 모델은 리사보다 두배나 빠르면서 가격은 3분의 1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채택했다. 스티브는 매킨토시 총괄 임원이 되면서 애플II의 주역들을 끌어들였다. 스티브 워즈니악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티브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실제보다 더 커 보이게 하는 기술은 탁월했다.
하지만 스티브와 래스킨은 끊임없이 언쟁을 벌였다. 스티브와 래스킨은 서로 함께 일을 할 수 없다고 했고 스티브는 매킨토시 프로젝트의 새 책임자로 결정되었다. 래스킨은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제프 래스킨을 '매킨토시의 아버지'로 기억하고 있다.
스티브는 기술적인 부분은 잘 몰랐지만 프로젝트의 중요한 부분은 직접 챙기려고 했다. 특히 컴퓨터 케이스는 자신의 고유 영역으로 생각했다.
1981년 2월 스콧이 회사가 너부 비대해졌으며 일부 직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스티브는 이를 승인했지만 스콧의 독단적인 조치라는 인상을 주도록 행동했다.
'검은 수요일'(스콧이 정리 해고를 선언한 날)의 여파로 스콧에게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직원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스콧은 3월말에 휴가를 다녀왔다. 일요일 저녁 마쿨라가 스콧을 불러 임원들이 그의 사직을 요구한다고 통보했다. 마쿨라가 사장 대리를 맡고 스티브는 임시 회장이 되었다. 그 결정으로 스티브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5월이 되자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소프트웨어를 사내에서 개발하는 대신 외주를 주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결정으로 시장 지배를 위한 IBM PC와의 싸움에서 매킨토시가 패배하게 되었다. 외주 회사를 고를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이 빌 게이츠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성공한 기업이었지만 애플보다 큰 회사는 아니었다. 빌 게이츠는 아직 부자도 아니었다.
IBM에서 의뢰받은 OS를 개발하는데 비해서 매킨토시는 그들에게 꿈을 주었다. 그해 여름에 IBM PC가 출시되었다. 매킨토시 팀은 IBM PC를 구입해 분해해보았다. 우아하지도 않고 간편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안도했다. 새 컴퓨터가 등장하면 IBM을 단번에 물리칠 자신이 있었다.
IBM의 10분의 1 크기의 회사인 애플이지만 거만한 광고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제품 출시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회사이름은 비틀즈의 음반사와 이름이 겹쳤지만, 'McIntosh'는 고가의 오디오 제품의 이름이었다. 같은 전자 기기 제조사이기에 저작권 관리 당국에서 승인할 가능성은 없었다. 매킨토시 랩스와의 협상 결과 애플은 'Macintosh'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다.
1983년 3월 애플은 존 스컬리를 새로운 사장으로 얻었다. 이미 펩스콜라에서 유력한 직위에 있었지만 스티브가 "정말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을 때 설탕물이나 팔며 남은 인생을 허비하실 생각인가요?"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1980년 출시된 애플 III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 1만 달러가 넘는 리사는 마이크로소트트의 OS를 탑재한 3,000달러의 IBM PC과 경쟁할 수 없었다. 존 스컬리의 취임과 함께 상승했던 애플의 주가는 63달러에서 21달러로 폭락했다.
11월 에이리언과 브레이드 러너의 감독 리들리 스콧이 애플의 '1984년' 슈퍼볼 광고를 제작했다. 1회에 100만 달러짜리 광고였다. 조지 오웰의 '1984년'과는 다른 세상을 위해 1월 24일 애플 컴퓨터가 매킨토시를 소개할 것을 알렸다.
약속대로 1월 24일 매킨토시는 그 베일을 벗었다. 매킨토시는 컴퓨터 합성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의 알렸다. 이때는 다시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처럼 생각되었다.
Posted by assam258